관상과 신비적 현상

                                                  

 

 

데레사에게 기도란 사랑의 완전함에 점차로 인도해 가는 '"이고 특별히 은혜 받은 사람들에게는 신비적 일치에로 가는 길이기도 하다. 자서전에서 데레사는 정원에 물을 대는 네 가지 방법의 비유로써 중요한 네 단계를 구분하고 있다. 즉 첫째는 물을 길어 올리는데 우물에서 팔의 힘으로 길어 올린다. 둘째는 도르래를 사용한다. 셋째는 샘에서 물을 끌어온다. 그리고 넷째는 하늘에서 내리는 빗물을 이용한다는 것이다. 더욱 넓은 체험으로 채워진 영혼의 성 안에서 데레사는 일곱 단계라고 하기보다는 오히려 일곱 궁방이라고 하여 구분하고 있다. 첫 단계-묵상, 능동적 거둠 기도-는 초보자의 상태를 말하고 있다. 이어서 수동적 거둠 기도가 따라오는데, 그 안에서 초자연적 관상이 드러난다. 초자연적 관상이란 자신의 여러 능력을 사용해서 영혼 안에 실체적으로 현존하시는 하나님께 영혼이 합일하는 참여를 말한다. 하나님은 영혼의 중심에서부터 활동하기 시작하여 점차로 인식과 사랑의 상대로서 당신을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영혼을 사로잡으실 때에는 먼저 하나님께 사로잡혀 있는 의지에만 하나님의 활동이 미치고 이어서 의지와 함께 지성에, 그리고 기억력에, 끝으로 상상력과 내적 · 외적인 감각에 미치게 된다. 데레사의 심리학적 견해에서 본다면 여러 능력들이 하나님의 생명에 참여하는 정도는 신비적인 일치의 정도를 드러내고 있다. 부분적 · 과도적 정도에 따라 신비적 합일은 하나님 안에서 받는 영혼의 변화를 통해서 필요한 여러 시련을 거쳐서 조금씩 전면적이고 결정적인 것으로 되어 간다. 먼저 단순한 만남에서부터 시작하여-5 궁방-다음에 오는 것이 "영적 약혼"-6 궁방-그리고 드디어 완전한 신비적 합일의 사랑인 "영적 결혼"이 찾아오게 된다.

다른 단계로 옮겨 감에 뚜렷한 구별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진행과정에는 늦어짐도 후회도 있을 수 있다. 영혼의 단계적인 신화(神化)는 자유로우며 전면적인 계약을 내포하고 있으며 더욱 영웅적인 충실함과 열렬하고 실행적인 사랑을 내포하고 있다.

데레사는 이러저러한 신비적 은혜가 완전함에 도달하기 위해서 필요 불가결한 조건이 아니라는 것과 그것을 잘못 알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렇지만 사랑의 성장에, 모든 덕행의 실천에, 교회를 위한 봉사에, 그리고 은혜 받은 영혼들에게 주어지는 예측할 수 없는 수많은 곤란과 고통과의 대결에 이 신묘한 은혜가 끼치는 것이야말로 힘 있는 영적 도움이 된다는 것을 데레사는 깊이 인정하고 있다.

그러므로 신비적 관상, "샘에서 생수를 마시는" 것을 동경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신비적 관상이 가능하지 않다고 여기는 것은 그 관상을 받을 가능성을 막아 버리는 것이 된다. "그것을 조금도 믿지 않는 이들은 그 체험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당신의 업적에 제한을 두지 않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대단히 좋아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로 이 신비적 관상은 엄밀한 뜻에서 초자연적 수준에 속하는 하나님의 순수한 선물입니다." "나의 초보적 기도는 초자연적이었던 것같이 느껴졌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의 인간적인 방법이나 개인적인 활동으로는 얻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 무리하게 청하여 얻으려는 그런 짓은 우리는 삼가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은 "두꺼비가 스스로 날기를" 바라는 것과 같은 짓이다. 유의만 한다면, 헌신적으로 남에게 봉사하는 것, 겸손, 양심의 조찰함으로 "마음 준비"를 할 수 있다. 이것이 데레사적 수행의 기본 방침이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자기를 당신께 온전히 드릴 때에만, 당신을 전적으로 우리에게 주십니다." 중요한 것은 원하시는 대로 맡겨 드리는 일이다. "하나님의 것인 이 보화를 하나님은 누구에게도 손해되지 않게 원하시는 때, 원하시는 대로, 원하시는 사람에게 주십니다." 확실한 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영혼을 같은 길로 인도하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나님으로부터의 전달은 신비적 상태의 본질을 형성하는 "본질 중의 본질"이고, 거기에서 이차적으로 부수되는 결과가 생기는 것을 혼동하지 말고 조심스레 식별해야 한다. 이 부수되는 결과들이란 심리적 · 신체적으로 일어나는 이상한 현상을 말한다. 이 이상한 현상의 첫번째 단계는 일반적으로 탈아(脫我)라는 표현으로 특징지어진다. 데레사는 황홀, 상승(上昇), 영의 비상, 탈혼-기절, 희열, 몽유(夢遊) 혹은 정지 등에 관해서 말하고 있다. 기능적인 또는 우발적인 한계, 심리적 또는 신학적인 한계, 그리고 그것의 강함이나 길이 등의 차이를 데레사는 이 여러 가지 표현법으로써 특징지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언제나 같은 초자연적 현실의 문제의 표현이다. 데레사에 따르면 "모든 것은 하나로 되어 있는 것"이다. 탈아 현상은 흔히 영성적인 능력들 안에 하나님의 사랑과 빛의 짧은 침입으로써 일어나는 것이다. 영적능력들이 가진 고유의 힘은 그 밀도가 짙은 초자연적인 작용 안에서 전면적으로 사로잡히기 때문에 다른 기능들-순응, 조정, 통합-은 완만하게 마치 정지하고 있는 것처럼 되어 버린다. "영혼은 육체 안에 그대로 머물러 있으면서 자기가 행할 수 있는 모든 활동에서 떠나는 것입니다." 탈아란 하나님 안에서 아직 완전히 변화되지 않은 생존의 무력함이다. 영혼과 육체와의 탁월한 영적 결합의 방법은 아직 완전히 굳혀지지 않았다. 이 조화가 "영적 결혼"이라는 완전한 합일에서 현실화되면 탈아의 수가 줄어들어 거의 없어지고 만다. 하나님으로부터의 전달은 이미 영혼을 흡수하여 외계로부터 떼어 놓는 일도 없고 고통을 느끼게 하지도 않는다. 이 때문에 데레사가 탈아를 신비적 합일의 길로 가는 구성 부분의 하나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데레사는 아직 그다지 완전하지 못한 영혼들을 회심케 하려는 목적으로, 하나님의 그 자비로 탈아가 일어난다는 것을 깊이 인정하고 있다.

탈아 상태에 빠질 때, 때때로 신체상에 일시적으로 다른 부차적인 면이 따른다. 그것은 공중에 뜨는 것, 경직 증상, 무감각의 현상들이고, 이 현상들은 영혼이 하나님으로부터 전달받은 농도에 따라 신체에 일어난 반사에 지나지 않는다. 이 이상한 현상들은 생명을 위험하게 할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그런 것들은 건강을 해치는데, 가끔 반대로 건강을 좋게 하는 경우도 있다.

종종 일어나는 몇 가지 병적인 증상을 거기에 부가할 수도 있다. 데레사는 귀에서 소리가 난다고 말했다. 그러나 신경병 환자 중에 신비가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한 일이다. 그러나 참된 신비적 생활의 폭은 신경병의 상태에서도 그대로 행할 수 있는 것이고 때로는 그 상태의 유인이 되는 일조차도 있다.

여러 가지로 일어나는 현시, 내적인 소리, 계시들에 대해서 말한다면 그것들은 본질적으로 신비적 일치의 길에 속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견디어 나가야 할 "참을 수 없을 것 같은" 시련 중에 있는 어떤 이들을 굳세게 하기 위해서 주어지는 것이다. 이것들이 참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인지 아닌지는 계속되는 좋은 결과를 보아 진실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우리가 그것들을 중요시하지 않거나, 혹은 물리치고 싶더라도 그것들은 받을 만한 이유가 있기에 주어진 것이기 때문에 거기에서 무엇인지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신경계통의 병-맹렬한 발작, 공상, 천성적인 허약함들에서 유래되는 거짓신비적인 상태들은, 그 상태의 지속 시간이나, 가르침의 내용과 효과의 결여에 의해, 또한 그것들이 일으키는 어리석은 상태에 의해서도 식별이 되는 것이다. 신비적 관상의 은혜를 바라는 것은 옳고 좋은 것일지라도, 그것과는 다른 이상한 은혜를 이것저것 바라는 것은 전혀 권할 수 없다. 데레사는 이와 같은 것을 열망하지 않도록 여섯 가지이유를 들고 있다. 그리고 데레사는 덧붙여 말한다. "내가 말하는 것을 믿으십시오. 가장 확실한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만을 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아는 것보다 하나님은 우리를 더 잘 알고 계십니다. 더구나 우리를 사랑하고 계십니다. 주님의 거룩한 뜻이 우리 안에 이루어지기 위해서 우리를 그 손안에 맡기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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