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의 가르침

 

 

경계의 가르침의 개요

 

경계(Cautela)는 십자가의 성 요한이 당신의 아들 딸들에게 해준 대답이다. 이것을 읽어 보면, 그의 아들과 딸들이 마음을 졸이던 질문의 내용에 짐작이 간다. 하나님께 몸바친 사람들 중에 과연 얼마나 한 영혼이 그분과의 합일에 다다를 수 있을까? 슬프게도 이 길에서 실패한 숱한 사람을 바로 이 눈으로 보고 있지 않은가? 나는 그들보다 나을 바 없으니, 어찌 성공할 생심인들 낼 수 있겠는가? 이러한 생각에서 저들은 바로 절망의 문턱에 다가서 있다. 이에 대하여 십자가의 성 요한은 초자연스런 낙관과 온건한 확신을 갖고 '이것이 이루어질 뿐더러 단시일에 된다'고 대꾸를 한다. 내적 생활에 정통한 이들에게 말하고 있기에 그들이 익혀 온 성사나 기도의 필요성은 제쳐두고, 세속악마(). 이 세 가지 고전적인 적과의 싸움이라는 각도에서 간결하게 풀어 나간다. 그리고 이 세 원수의 각각에, 또 세 가지 경계가 이어져 이 Cautela는 도합 아홉의 경계로 세속에 대해서? - 무릇 온갖 애정에서, 잘못된 애정뿐만이 아니고 비록 올바른 애정일지언정 지나치게 자연적인(본성적) 것에서 말끔히 벗어나야 한다. 얼핏 보아 난폭하게 들리는 이 권고를 마음에 새겨두고 실천하는 것이 좋다. 그러다보면 불완전하게 사랑하던 이들을 언젠가는 하나님 사랑으로 사랑하게 될 것이다. 한때는 은혜를 저버린 듯한 느낌이 들지 모르나 멀지않아 하나님께 대한 그대의 사랑 안에서 저들을 다시 기꺼이 만나게 될 것이다.

세속이 주는 물질적 재보에 대해서? - 이것은 항시 꺼려야 한다. 진정 행복한 사람이란 가난한 이들이다. 하나님께서 떠맡아 몸소 저들을 돌봐주시기 때문이다. 수도원 안에도 헛된 호기심과 간섭의 허울을 쓰고 세속 정신이 스며들 수 있다. 이를 이겨내기에는 보지 않고 사는 것이 상책이다.

악마에 대해서? - 믿음으로 대항한다. 헌데 정신이 계시진리에 동의함만이 믿음이 아니라, 순명하는 터전에서 구체적으로 살아야 한다. 생활에서의 오롯한 종속과 장상 안에서 하나님을 볼 것. 그리고 교만의 으뜸인 악마를 보기 좋게 무찌르는 깊은 겸손.

()에 대해서? - 공동 생활에 으레 있게 마련인 시련을 받아들이는 것. 그대는 조각가에게 새겨지는 대로 내맡겨야 한다. 겉으로의 일이나 영성 수행에서도 오직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만을 겨눌 것이지 달고 쓰거움에 흔들려서는 안된다. 오로지 하나님 사랑만이 이 애집(愛執)을 이겨내는 것이다. 그리고 육의 사랑이란 다름 아닌 자애심이라 하겠다. 순명의 수련으로 실천하는 믿음은 지성(知性)을 말끔히 씻어(정화, 浮化) 우리를 악마에게서 해방시켜 준다. 가난의 수련으로 실천하는 바램()은 기억을 씻어서 세속에서 우리를 해방시킨다. 정결의 수련으로 실천하는 사랑은 의지를 부셔서 우리를 육에서 해방시 킨다.

 

 

 

 

 

 

 

경계의 가르침(CAUTELA)

 

 

참다운 수도자가 되고, 재빨리 완덕에 나아가기를 바라는 이가 늘상 마음속에 간직해야 할 가르침 베아스 맨발 까르멜 수녀들에게 한 것이다.

 

 

1. 거룩한 잠심(거둠질), 침묵, 영의 이탈과 정신의 가난에서 성령의 고요한 싱그러움을 맛들이고, 이것으로 하나님과 하나 되어 피조물에서 오는 헤살에서 놓여나며, 악마의 속임수를 벗어나, 자신에게 해방되기를 애타게 바라는 수도자는 다음 가르침을 실천해야 할 것이다.

 

2. 만일 제 탓으로 신분상의 의무를 다하는 데 깔축없도록 평소에 마음쓰고 있다면 그 밖의 딴 일에 힘들여서 수련하지 않아도 모든 덕을 한꺼번에 닦고 거룩한 평화를 누리며 재빨리 완덕에 다다를 것이다.

 

3. 이렇게 되려면 영혼의 적인 세속악마에서 해를 입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세속은 그 중 수월한 편이고 악마는 알아채기 힘드는 원수이며 육은 셋 중에서 가장 억센 적인만큼 그의 공격은 '묵은 사람'이 살아 있는 한 물러나지 않는다.

 

4. 이 원수를 이겨내려면 셋 다 통째로 넘어뜨려야 한다.

그 하나가 약해지면 다른 둘도 맥을 못 쓰는 법이다. 그리고 이 셋이 몽땅 정복되고 보면 영혼 안에 싸움은 이미 끝장난 것이다.

 

 

세속에 대해서

5. 세속이 줄 만한 해를 입지 않으려면 세 가지 경계를 해야 한다.

 

첫째 경계

 

6. 첫째 경계는 근친(近親)이든 아니든, 거기서 마음을 떼어 누구에게나 한결같은 사랑과 같은 잊음으로 대하는 것이다. 어떤 의미로는 근친에서는 더욱더 이탈해야 한다. 그것은 근친 사이에 언제나 살아 있는 애정, 영성의 완전을 차지하려면 항상 억눌러야 할 자연적 애정으로 살과 피가 새로이 기승을 부리지 않기 위해서다.

그들 모두를 남처럼 여겨라. 하나님께 드릴 사랑을 저들에게 빼돌리기보다 이래야만 보다 더 저들에 대한 의부도 잘하게 될 것이다.

어느 누군들 독별나게 더 사랑하지 말라. 그렇지 않을진대 빗나가 버린다. 이유인즉 하나님이 보다 더 사랑하시는 이가 가장 사랑받을 값어치가 있건만 우리는 하나님이 누구를 더 사랑하시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이를 한결같이 잊는다면(이것이 거룩한 잠심을 얻기 위해 십상이지만) 저들을 사랑하는 데 지나치거나 모자라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을 것이다. 좋든 그르든 저들에 대해서 생각지 말라.

되도록이면 솔직하게 저들을 떠날 것. 그래야만 안전할 것이, 영혼이 피조물에서 받는 불완전에서 헤어나는 길이 이밖에는 없기 때문이다. 만일 이것을 지키지 않을진대, 옳은 수도자 되기를 배우지도 못하고 거룩한 잠심을 익힐 수도 없을 것이다. 이 점에 있어서 행여나 제멋대로 하도록 내버려둔다면 악마는 어느 틈으로든 속이려 들 것이다. 아니면 선이나 악의 허울을 쓰고 속일 것이다.

 

둘째 경계

 

7. 세속에 대한 둘째 경계는 물질의 이익을 피하는 것이다. 이런 해를 피하고 지나친 욕구를 절제하려면 무릇 가지기를 꺼리고 음식이나 의복이나 다른 피조물 혹은 내일(앞날)에 대해서 마음 써서는 안된다. 우리의 마음은 보다 더 숭고한 것, 곧 하늘나라를 찾아야 한다. 이는 오롯이 하나님을 섬기기 위함이고 이 밖의 것은 드높으신 하나님이 덤으로 주실 것이다. 왜냐하면 짐승들에게도 마음을 쓰시는 그분께서 우리를 잊으실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면 감성의 침묵과 평화를 차지할 것이다.

 

셋째 경계

 

8. 셋째 경계는 수도원에서 동료들로부터 오는 해를 입지 않기를 배우는 데 중요한 것이다. 숱한 이들이 이것을 지키지 않았기에 영혼의 평화와 행복을 잃었을 뿐더러 많은 악과 죄에 떨어졌고 또 떨어지기가 일쑤다. 이 경계란 수도 단체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생각지 말도록 조심할 것. 더구나 여기에 대해 지껄이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수도자 한 사람에 관한 사정이나 혹은 그에 관계된 사정에도 마찬가지다. , 그들의 성질과 생활 태도나 그 하는 일에 대해서 비록 그것이 아무리 중대하더라도 꼭 알려야 할 분에게만 알맞고 마땅하게 여쭈는 것밖에, 열성이라든가 구원의 손을 편다는 구실로서도 절대 말해선 안된다. 보고 들음에 걸려 넘어지지 말고 놀라지도 말라. 그대의 영혼을 일체 잊음 안에 보존하라.

 

9. 왜냐하면 그대가 그것들을 보려고 들면 비록 천사들 가운데 산다 해도 그들의 참다움을 알아듣지 못하기에 좋이 여겨지지 않을 것이다.

롯의 아내를 예로 삼아, 그들은 소돔의 멸망에 마음을 어지럽혀 사태를 살피려고 뒤돌아보다가 소금상이 되어 버렸다. 비단 악마들 사이에서 살아야 한단들, 저들을 거들떠보지도 말고 아랑곳없이 부질없는 생각에 성화를 받지 않게 영혼을 깨끗이 간직하기를 하나님께서 원하신다는 것을 깨쳐야한다.

무릇 어느 단체이든 걸려 넘어지는 기회는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왜냐하면 성인들을 넘어뜨리려고 안간힘을 다 쓰는 악마가 모자라지 않고 하나님도 성인들을 단련시키고 떠보기 위해서 그것을 허락하시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조심하여 마치 자기는 집안에 없는 듯이 살지 않으면 아무리 애를 써도 수도자답지는 못할 것이다. 그리고 거룩한 이탈이나 잠심에 다다를 수도 없고 자기 태도에서 오는 해도 면할 길이 없을 것이다. 또 그 지향이 아무리 훌륭하고 열심이 대단하다 해도 악마는 어느 면에서든 그대를 잡아챌 것이다. 이같이 영혼을 흩어지는 대로 내버려둔다면 이미 악마에게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야고보의 "누가 만일 스스로 신앙인이라 하면서 그 혀를 억제하지 않으면 그 믿음은 헛되다"고 한 말씀을 기억하라. 이것은 내적 해()도 외적 해에 못지않게 삼가야 한다는 걸 알아들어야 한다.

 

 

악마에 대해서

 

10. 완덕을 겨냥하는 사람은 그 둘째 적인 악마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세 가지 경계를 할 것이다. 이때 꼭 마음에 새겨 둘 것은 영성인들을 속이기 위해 악마가 흔히들 쓰는 술책은 악이 아니라 선의 허울로써 속인다는 것이다. 빤히 알아채는 악으로써는 그들이 쉽사리 손대지 않을 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좋게 보이더라도, 특히 그것이 순명으로써가 아닐 때 단단히 조심해야 한다. 이런 경우 가장 안전하고 평범한 처사는 여기에 대해 상의할 사람의 권고에 달렸다.

 

첫째 경계

 

11. 아무리 선행이나 애덕처럼 보일지라도 자기를 위해서든 수도원 안판의 누구를 위해서든 순명으로 지시된 것이 아니면 아예 아무것도 하려고 들지 말라. 이것을 지키면 공을 세우고 안전할 것이다. 가지려는 정신을 멀리 물리쳐라. 그러면 악마를 벗어나고 또 우리는 아무도 모르는 하나님 당신의 날(; 공심판)에 그대에게 설명을 요구하실 모든 악을 면할 것이다.

일의 대소를 막론하고 이 권고를 따르지 않으면 자신은 썩 잘하고 있다 해도 반드시 악마에게 속고 만다. 비록 순명으로 지배되지 않은 것밖에 아무런 다른 잘못이 없다손 치더라도 그것만으로 이미 길은 그르쳤고 책잡히게 된다. 하나님은 희생보다 순명을 더 좋이 보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도자의 행위는 자신의 것이 아니고 순명의 것이며, 만일 순명에서 이것들을 때어놓는다면 그건 다 무익한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

 

둘째 경계

 

12. 둘째 경계는 누구이든 간에 그대의 장상이 하나님의 대리자인 만큼 하나님 아래로 보아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겸손의 적인 악마는 이 점에 부지런히 손을 쓴다는 것을 잊지 말자. 장상을 이렇게 대하는 것은 적잖은 이득이고, 이것 없이는 막심한 손해를 입을 것이다. 그의 성격, 거동, 몸짓, 처사 등을 보지 않도록 극히 조심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선 '그대가 받들 하나님'(장상을 통한)으로 해서가 아니라 다만 눈에 보이는 장상의 태도 여하에 따라 움직이면서 신적인 순명을 인간적인 것으로 바꾸어 버리는 잘못을 초래할 것이다. 또는 장상의 불쾌한 성질에 화를 내고 그가 친절하고 유순할 때 기뻐한다면 그 순명은 하는 것 같으나 헛수고로 돌아간다.

나는 말하노니, 악마는 이런 못마땅한 성질을 보게끔 꾀어서 숱한 수도자의 완덕을 망쳐버렸다. 저들은 이런 생각으로 순명했기에 하나님 눈앞에는 아무런 값이 없다. 이 점에 굳건히 싸워 나가 그 장상이 이분이든 저분이든 개인의 감정에 무관하지 않고선 절대로 영성인이 되지도 못하고 서원을 지킬 수도 없을 것이다.

 

셋째 경계

 

13. 셋째 경계는 직접 악마와 맞서는 것인데. 곧 이웃의 선익을 내것처럼 기뻐하고 모든 일에 저들이 그대보다 앞서기를 바라며 더욱이 이것을 마음속 깊이 원하도록 힘쓰면서 말과 행위로써 참다운 겸손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래야만 선으로 악을 이기고 악마를 무찔러 마음의 기쁨을 누릴 것이다. 더구나 못마땅한 이에게 이것을 실천하라. 그렇지 않고선 실다운 애덕도 진보도 없다는 것을 알라. 또 가장 작은 이에게 가르치기를 원하기보다는 모든 이에게서 배우기를 좋아해야한다.

 

 

()에 대하여

 

14. 셋째 원수인 자기 자신과 육적인 본성을 이기려면 또 세 가지 경계가 필요하다.

 

첫째 경계

 

15. 첫째 경계는, 그대가 수도원에 온 것은 오로지 모든 이가 그대를 단련시키기 위함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그래서 딴 수도자들의 기질과 행동에서 볼 수 있는 불완전과 마음의 동요를 면하고 모든 면에서 이득을 보려면 수도원 안의 모든 이가 그대를 단련하는 기사라고 여겨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누구는 말로써. 누구는 행동으로, 또 누구는 상반되는 생각으로써 그대를 닦아줄 것이다. 그대는 마치 세공(細工)하는 손에도, 채색하는 손에도, 금을 달구는 손에도, 몽땅 자신을 내맡기는 조상(彫像)처럼 저들에게 몸을 맡겨야 한다. 이것을 지키지 않고선 자기의 성질과 감정을 이겨낼 수도 없고 수도자들에게 올바로 처신할 수도 없을 뿐더러 거룩한 평화도 얻지 못하고 잘못에 떨어지는 기회와 악을 피할 수도 없을 것이다.

 

둘째 경계

 

16. 둘째 경계는, 하는 일이 주님의 봉사에 맞갖는 것이라면 그것이 마음에 내키지 않는대서 게을리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마음에 드는 일이라도 해야 할 의무가 없는 한 하려고 들어서도 안된다. 그렇지 않고선 꿋꿋하게 나갈 수도 없고 자신의 약점을 이겨낼 수도 없다.

 

넷째 경계

 

17. 셋째 경계는, 영성인이 수행(修行)할 때는 도무지 즐거움에 눈이 팔려서도 안되고 쓰거움을 피할 것도 아니며 도리어 힘들고 불쾌한 것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래야만자기 본성을 꺾을 수 있다. 이와 달리한다면 자애심을 버리거나 하나님의 사랑을 차지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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