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략하게 잘 쓰여진 글이다.

오랜 학문의 연구와  그 깊이를 느끼게 한다. 

기도를 이해하는데 많은 유익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아  읽도록 권하고 싶다.

특히, 이글을 읽은 다음  "누구나 할 수 있는 관상기도" 제5장 영적 인식과 작용, pp.87-95를 읽으면

이해에 큰 도움을 줄 것이며, 확실하게 관상기도의 원리를 이해하게 될 것이라 믿어

일독을 권합니다.

                                                                        2015. 12. 17  

                                                                                          고려수도원  박노열




기도하는 삶

 

3 마음으로 기도한다

      

기도는 마음의 근저에 뿌리를 내리고 있으며 기도의 장소는 마음이다. 그러므로 기도를 잘 하고 싶으면 마음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기도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 먼저 주님의 은총을 간구해야 하지만 마음속으로 들어가는 노력도 필요하다. 기도는 은총인 동시에 우리 노력의 결실이다. 우리의 노력이라는 면에서 볼 때 기도가 잘 되느냐 안되느냐는 근본적으로 마음속 깊이 들어가느냐 안 들어가느냐에 달려 있다. 사람은 마음의 한가운데서 자신을 만나 하나님과 대면하여 기도하게 된다.

이제 미음의 개념과 '마음속 깊이 들어가' '마음으로 기도 한다'는 말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한다.

 

 

1. 마음의 개념

 

1) 구약 성경

구약 성경에서 마음은 인간 전체를 가리키고 인격의 진수를 뜻한다. 마음은 사람의 가장 심오한 내면성을 의미한다.

 

"내가 여호와인 줄 아는 마음을 그들에게 주어서 그들이 전심으로 내게 돌아오게 하리니"(24:7)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르쳐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31:33~34)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과 한 길을 주어 자기들과 자기 후손의 복을 위하여 항상 나를 경외하게 하고, ~~~ 나를 경외함을 그들의 마음에 두어 나를 떠나지 않게 하고."(32:39-40)

 

예레미아에 의하면, 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을 알고 공경하는 마음을 주겠다고 약속하신다. 마음으로 하나님을 알고 공경한다는 의미는 하나님을 지성으로 이해하고 행동으로 공경한다는 뜻이 아니라, 전 인격으로 하나님을 이해하고 공경한다는 뜻이다. 마음의 변화는 인격 전체의 변화를 뜻하며, 인간 내면의 가장 깊은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변화, 가장 근본적인 생활태도의 변화를 가리킨다. 그 결과 사람은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

에스겔은 하나님의 게약을 '새로운 마음의 삽입'으로써 설명한다.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영을 주며 그 몸에서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 내 율례를 따르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11:19-20)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36:26-27)

 

하나님은 사람의 돌과 같이 굳은 마음을 도려 내시고 살과 같이 부드러운 마음을 넣어 주신다. 이리하여 사람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의 규정을 철저히 따르게 된다.

 

2) 신약 성경

사도행전에는 하나님의 적극적 활동으로 인하여 신앙을 받아들이게 된 한 여자의 이야기가 나온다.

 

"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 그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16:14-15)

 

본문에서 '마음을 열어' 라는 표현은 하나님께서 사람의 내부에서 활동하심으로써 그 사람의 마음을 개방시켜 그 사람으로 하여금 내면에서 신앙을 받아들이게 하시는 것을 뜻한다. 사람이 회개하여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자신의 노력에 앞서 먼저 하나님의 활동과 은총이 필요하다.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오시어 활동하시는 하나님의 창조적 힘으로 인하여 사람은 낡은 인간을 그 행위와 함께 벗어 버리고 새 인간으로 갈아입게 된다(l4:22-24; 3:9-10). 의화는 마음의 새 창조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재생이다.

의화의 원천은 성령이시다. 성령께서는 사람의 마음보다 더 깊은 데서 활동하시고 마음을 그리스도화 시켜 그 사람을 전적으로 그리스도 몸의 지체로, 아버지의 자녀로 변하게 하신다. 이리하여 그리스도인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아버지를 '아빠' 라고 부르게 된다(8:15; 4:6). 이것이 새 마음으로, 새 인간이 되어 기도한다는 뜻이다.

마음은 결코 감정, 기분, 감수성이 아니고 애정이나 미움을 느끼는 어떤 기관도 아니다. 그것은 지성과 의지의 능력도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어떤 추상적 개념도 아니다. 마음은 모든 기관이나 능력보다 훨씬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으며 그것을 움직이고 조절하는 원천으로서 모든 신체적, 정신적 행동의 궁극적인 기반이자 생활의 근원이다. 신비가들이 말하듯이 마음은 '영혼의 선단(先端)'이며 '정신의 절정'으로서 인격의 가장 심오한 차원에 존재하는 내면성이다.

 

 

2. '껍질'로 덮여 있는 마음

 

마음은 사람의 정신과 심리와 신체의 심층에 자리 잡고 있으므로 이를 의식하고 실감하기가 어렵다. 보통 마음은 정신적, 심리적, 신체적 행위 밑에 잠자고 있거나 마비되어 있다. 이런 마음을 잠에서 깨우고 자유로이 활동하게 하는 것이 바로 정신수련과 영적 수련 그리고 기도 수련의 근본이 된다. 마음이 지니는 원래의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정신을 집중하여 자기 의식의 깊은 수준에 내려가는 것이 필요하다. 자기 의식이 깊이 내려갈수록 마음속 깊이 들어가서 자신의 참모습을 발견하고 하나님을 만나게 되어 하나님과의 친교로서의 기도를 잘 할 수 있게 된다. 그 반대로 자기 의식이 마음속에 들어가지 못하고 심리적 흥분 상태가 될수록 자신과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게 되어 기도를 할 수 없게 된다. 이것이 바로 마음이 잠들고 마비된 상태이다. 이 사실을 마음의 '껍질'이라는 비유적 표현으로 다음과 같이 설명해 볼 수 있다.

사람의 마음은 껍질로 덮여 있다. 껍질은 사람의 자기 의식을 외면화하고 산만케 하고 흥분케 하는 모든 것이다. 이 껍질로 인하여 마음이 잠들거나 마비되어서, 사람은 지성과 의지, 감정, 감각, 감수성 등의 능력을 제대로 활동하지 못하게 된다.

껍질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근심 걱정, 산만성, 무질서 등은 얇은 껍질이며 미움, 분노, 교만, 질투, 복수심 등의 악의는 보다 두꺼운 껍질이요 큰 죄악 등은 아주 두꺼운 껍질이다. 마음이 여러 능력을 활동하게 하는 데 있어 얇은 껍질은 작은 피해를 끼치지만 두꺼운 껍질은 큰 피해를 끼친다.

지성과 의지를 비롯하여 감정, 감각, 감수성 등의 모든 능력은 외부 세계의 영향을 받아 외부 조건에 반응하기는 하나, 이 능력을 근본적으로 통제하고 다스리는 것은 어디까지나 마음이어야 한다. 그러나 그 마음이 죄악과 악의와 무질서 등의 껍질로 덮여 있다면 여러 능력을 통제하지도 다스리지도 못하게 된다. 그 결과 능력은 외부 세계와 외부 조건의 지배를 받게 된다. 이것이 바로 마음이 잠들고 마비된 상태이다. 그 마음은 참으로 둔해서 알아듣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깨닫지도 못한다(6:9-10; 13:14-15; 4:12; 8:17-18; 8:10).

 

 

3. 마음의 '껍질'을 벗긴다

 

사람의 자기 의식이 마음에 도달하는 것은 인간 생활의 가장 중요한 과제이며 사회생활, 정신생활,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서도 가장 근본적인 행위가 된다. 자기 의식이 마음에 도달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마음을 덮고 있는 껍질을 벗겨야 한다. 먼저 죄의 두꺼운 껍질을 벗긴다.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고 자기 의식과 자기 마음 사이의 관계를 차단시키므로 하나님과 친교를 나누는 기도를 할 수 없게 하고 자신을 전혀 알아보지 못하게 한다. 이런 의미에서 죄는 기도의 가장 큰 적이다. 그 다음에 모든 악의 껍질을 벗긴다. 미움, 분노, 교만, 질투, 복수심 등의 껍질은 자기 자신과 하나님의 모습을 흐리게 하여 기도를 어렵게 한다. 마지막으로 근심 걱정, 산만성, 무질서 등의 껍질을 벗긴다. 이 껍질들은 사람의 심리를 불안하고 변덕스럽고 무기력하게 만들고 자기 자신과의 만남과 하나님과의 만남을 얕은 수준에 머물게 하여 참다운 기도를 바치지 못하게 한다.

마음의 둘레에 무수하게 붙어 있는 껍질을 하나씩 벗겨 가면서 마음에 도달하려는 노력이 바로 정신 수련이요 영적 수련이며 기도의 수련이다. 벗기면 벗길수록 자기 의식은 마음의 핵심에 도달하여 사람은 내면화되고 집중되고 단일화 되며 순수하게 된다. 반대로 많은 껍질들이 붙어 두꺼워지면 두꺼워질수록 자기 의식은 마음에서 멀어지며 사람은 외면화되고 산만해지고 복잡하게 되고 불순하게 된다. 전자의 길은 영을 따라 사는 삶의 길이요, 영적인 사람이 되는 길이며, 후자의 길은 육을 따라 사는 삶의 길이요, 육적인 사람이 되는 길이다(참조: 8:1-17; 5:16-25).

마음의 핵심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마음의 껍질을 몇 개 정도만 벗기면 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벗겨가야 한다. 간단없는 마음의 탐색, 끊임없이 반복되는 마음속으로의 침입, 이것이 정신 생활과 영성 생활의 내용이요 목적이다.

우리 자신의 가장 심오한 현실, 우리 자신의 가장 참다운 모습, 이것이 우리의 마음이다. 마음은 아무 가림도 속임도 없는 자기 자신이다. 그러므로 이 마음에서 사람은 자신의 진실한 모습을 발견하고 자신과 직접 대면할 수 있다. 곧 마음에서 자기 자신을 알 수 있다.

사람은 하나님의 모습으로 창조되었으므로(1:26) 사람의 진실한 모습은 하나님의 모습이다. 마음에서 자기의 진실한 모습을 본다면 하나님의 모습을 보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마음에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고유한 이름으로 부르시어 말씀을 건네시고 우리도 하나님을 친밀하게 부르면서 하나님과 대화를 나눈다. 이렇듯 마음의 심오한 곳에서 하나님과 우리가 만날 때 비로소 인격적 만남과 내밀한 친교가 이루어질 수 있다.

 

 

4. 기도의 상태

 

세례를 받은 그리스도인의 가장 심오하고 본질적인 현실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이다. 이는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열매인 성령을 받아 그리스도의 형제 자매가 됨으로써 이루어졌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인의 참은 가장 깊은 차원에서 성령의 인도를 받아 그리스도와 같은 입장에서 하나님을 아빠로 모시는 데에 있다. 그는 자기의 삶과 행동의 근본에서 하나님을 아빠로 모신다. 곧 마음 한가운데에 아빠를 모신다. 입으로 소리내어 아빠라고 부르지 않아도 그리스도인의 삶과 행동 자체가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르고 있다. 그러므로 마음이 아빠라고 부를 때 그리스도인의 삶과 행동의 근본인 그 마음은 바로 일종의 기도를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세례를 받는 순간부터 기도의 삶과 행위를 시작하고 기도의 마음을 가지기 시작한다.

이 기도의 마음은 어떤 기도를 의식적으로 외우는 행위라기보다 삶과 행동의 근본이 하나님께 향하는 것으로 특징지워진 기도의 상태이다. 본인이 알거나 모르거나 상관없이 그리스도인의 마음은 그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드러내어 살고 행동하게 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삶과 행동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과 행동이며 하나님을 아빠로 모시는 살과 행동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의 마음은 기도의 상태에 있으며 그의 삶과 행동은 기도의 상태 안에서 친행된다.

마음은 사람의 능력과 기관과 행동의 심층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이와 같은 기도의 상태에 있으면서도 그것을 의식하지 못한다. 마음은 아빠의 사랑을 받고 아빠를 사랑하고 있으면서도 그 사랑을 맛보지도 알지도 못한다. 더군다나 여러 가지 죄와 악의와 무질서의 껍질로 덮여 있을 경우에는 마음이 기도의 상태에 있음을 알아차리는 것이 더욱더 어려워진다. 마음에 자리 잡은 기도의 상태는 무의식 수준에 있으며 잠들어 있거나 마비되어 있으므로 개발되지 않은 상태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5. 기도의 행위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무의식적인 기도의 상태를 의식하게 되었을 때 보통 우리가 말하는 기도의 행위가 된다. 즉 잠재의식 속에 묻혀 있는 기도의 상태가 의식 수준에 올라왔을 때 사람은 소위 기도라고 불리는 행위를 하게 된다. 무의식적인 기도의 상태가 의식적인 기도의 행위로 되기 위해서는 자기 의식이 마음속 깊이 들어가야 한다. 자기 의식이 마음 깊은 곳으로 들어가게 하려면 마음의 둘레에 붙어 있는 껍질을 제거한 후 자기 의식을 마음에 집중시켜야 한다. 이럴 때 자기 의식은 기도의 상태를 의식하게 된다. 곧 마음의 무의식적 기도의 상태가 의식의 수준으로 올라온다고 할 수 있다.

자기 의식과 마음이 만날 때 이미 마음에서 잠재적으로 바쳐지고 있던 기도가 의식 세계로 뛰쳐나와 의식적 기도의 행위가 된다. 이미 오래 전부터 바쳐지고 있었던 기도가 마음의 껍질을 꿰뚫고 뚜렷한 행위로서 표면에 나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음을 속박하고 있는 여러 가지 죄와 악의와 무질서의 껍질에서 마음을 해방시켜 자유의 상태로 되돌려 놓아야 한다. 이렇게 될 때에야 마음은 원래 지니고 있던 기도의 능력을 그대로 발휘할 수 있다. 게다가 사람이 자기의 모든 능력을 마음에 집중시킨다면 마음은 그 능력들까지도 기도에 전적으로 활용하게 될 것이다.

기도는 마음의 껍질을 제거하기만 하면 저절로 나오기 마련이며 마음 안에 들어가 집중하기만 하면 마음에서 우러나오지 않을 수 없다. 이는 발굴된 유전에 송유관(送油管)을 넣기만 하면 원유가 솟아나오는 것과 같고, 큰 댐의 수문을 열기만 하면 막대한 양의 물이 넘쳐 나오는 것과도 같다.

어느 저자에 의하면 그리스도인의 마음은 재로 덮여 있는 숯불과 같다고 한다. 곁으로는 보이지 않으나, 재 밑에는 시뻘건 숯불이 타고 있다. 여기에 마른 나무 가지 하나를 던지면 갑자기 불길이 솟아올라 나무 가지를 태우는 것과 같다. 재 밑에 숨어 있던 불이 나무 가지에 타오르면서 다른 가지를 불로 변하게 하는 것이다. 재로 덮여 있던 숯불은 껍질로 둘러 쌓여있는 마음이고, 나무 가지를 던지는 일은 마음의 껍질을 벗겨 자기 의식을 마음속으로 들어가게 하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나무 가지에 불이 붙어 타오르는 것은 마음속에 이미 있었던 기도의 상태가 의식적인 기도의 행위로 되는 것을 뜻한다. 재 밑에 숯불이 이미 있었듯이 마음속에는 기도의 상태가 잠재해 있다.

 

 

6. 기도의 상태에 공명한다

 

기도는 우리가 생각해 내는 것도 아니고 창조하는 것도 아니다. 기도는 외부의 어떤 사람이나 책이나 분위기에서 얻는 것도 아니다. 기도할 때는 외적인 일이나 피상적인 감정, 감각 등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 의지해야 한다.

기도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마음에 원래부터 주어진 은총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성령의 인도에 따라 자신의 이 본래적인 기도의 모습을 찾아내고 식별하고 개발해 나가는 것이다. 즉 이미 주어진 기도의 상태를 발견하고 그 리듬에 공명(共鳴)하는 일이다. 이는 곧 자기 지성과 의지, 몸과 정신, 감정과 감각 그리고 동작, 자세, 목소리 등 모든 능력과 기관을 기도의 리듬에 맞추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렇게 성령의 인도로 자신의 본래 기도의 리듬에 공명할 때 비로소 전 인격적이고 의식적이고 정성어린 기도의 행위를 하게 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기도의 리듬에 생활과 활동까지 공명하게 된다면 생활과 활동도 일종의 기도가 된다. 자기의 생활과 활동을 기도의 장소인 마음속으로 가져가 마음에서 이루어지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마음에서 바쳐지고 있던 기도는 점차생활과 활동에 스며들어 영향과 힘을 주게 되고 마침내 생활과 활동 전체를 기도로 변화시킨다. 기도의 상태는 원래 마음에서 무의식적으로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르고 있는 상태이지만 그 마음에 생활과 활동을 의식적으로 합치시키고 공명하게 함으로써 생활과 활동이 일종의 의식적인 기도가 되게 하는 것이다. 생활과 활동이 하나님을 아빠로 모시고 아빠라고 부르는 상태를 의식적 표현하고 있다면, 그 생활과 활동은 틀림없이 기도이다.

 

 

7. 마음으로 돌아간다

 

마음 밖에서 헤매고 있는 자기 자신을 마음으로 돌아오게 해야 한다. 마음은 인격의 핵심이며 자기 의식의 고향이다. 사람은 평소에 쉽게 이 고향을 떠남으로써 자신을 잃어버리곤 하는데 마음으로 기도하기 위해서는 잃어버린 자신을 다시 찾아야한다. 자신의 진실한 모습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모습이요, 하나님을 아빠로 모시는 모습이다. 자신은 하나님의 모습으로 창조되었으며 그 모습은 바로 마음 안에 농축되어 있다. 따라서 자신의 모습이요, 하나님의 모습인 마음 안에서 사람은 자신을 만나고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마음에서 사람은 참으로 하나님과 진정한 대화를 나누고 친밀한 친교를 나눌 수 있다.

기도는 사람의 외부에 있지 않고 내부에 있다. 사람이나 책을 통하여 외부에서 받아들이거나 배우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지도와 책의 설명은 자신의 기도의 상태를 발견하고 개발하는 데 도움이 될 뿐이다. 기도의 마음이 없으면 아무리 외부의 지도와 설명을 받아도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기도의 고향, 기도의 장소는 마음이므로 자기 마음속에서 기도를 찾아야 한다. 기도의 장소는 지성도 의지도 아니고 그밖의 다른 어떤 능력이나 기관도 아니다. 이 능력들은 그것들이 마음에 집중될 때에야 비로소 기도에 도움이 된다.

마음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지성만으로 기도하려고 할 때 그 기도는 차갑고 형식적인 기도가 될 것이다. 겉으로는 정확하계 보이지만, 실제로는 하나님과의 친교를 이루지 못한다. 의지만으로 기도하려고 할 때 그 기도는 일종의 정신 수련이나 윤리 도덕적인 노력에서 그치게 된다. 아무리 꾸준하게 기도하더라도 인내와 희생 정신만으로는 기도의 즐거움과 은혜로움을 맛보지 못한다.

감정이나 감각을 중심으로 기도할 때에도 감정적 기도, 감각적 기도가 되고 만다. 감정적이고 감각적인 열성은 피상적이고 뿌리가 없어서 일시적이고 실생활에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한다. 지나치게 감정적이고 감각적인 열성은 해로우며 아무 이익이 없다. 신앙과 기도의 열성은 더욱더 내면화되어 실생활과 행동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상상도 기도에 도움이 되지만 상상만을 중심으로 기도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결국, 마음이 지성과 의지와 감정, 상상력 등을 적절히 조절하여 이용할 때 전 인격적 행위로서의 기도가 이루어진다. 전 인격적 행위로서의 기도는 항상 마음에 그 기반을 두어야 하며 마음으로 바쳐져야 한다.

 

 

기도하는 삶(김보록).hwp





God Bless Yo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