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을 조심하라.


내재하신 하나님과 합일하기를 원한다면 자신의 인생은 자신이 책임져라.

내제하신 하나님의 은총으로 관상을 이루고 관상적인 삶을 누리기를 원한다면 모든 것을 벗어버려라.
하나님 한분 외의 모든 것을 벗어버려라. 
그것이 무엇이든 떠오르는 모든 생각까지도 던져버려라. 그 모든 것은 다 분심이다.
모든 분심을 버리고 조용히 그분 앞에 앉아 침묵하라.
그분의 특별하신 은총으로 그대와 합일을 이루어 주실 것이다.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시 46:10)

 

수도를 위해서는  수도원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주장에 대하여 생각한다.
수도란 결국 하나님과의 합일을 이루는 것을 뜻한다.


하나님과 합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세상과 하나님과의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세속적인 것을 내려놓고 수도의 세계에 입문하는 것은 균형을 잃는 것이다.
길거리에서도 시장 바닥에서도 물들지 않고 균형을 이루는 자가 진정한 수도자이다.
길거리에서도 시장바닥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다면 아무런 문제없이 시장바닥에서도 살수 있다.

수도원이나 깊은 산중에 들어가서 홀로 수행한다 해도 시장바닥이 따라온다.
시장바닥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거기가 시장바닥이다.
시장바닥은 시끌거리고 잡다한 소음의 연속인 생각과 마음 속에 있기 때문이다.

생각은 어디를 가나 따라다닌다. 어떻게 여기에 나를 벗어놓고 다른 곳으로 피할 수 있겠는가?
수도원으로 가나 산으로 가나 어디를 가든지 나는 나 자신과 함께 갈 뿐이다.

주어진 상황에서 도피하려고 하지 말라. 그 보다는 깨어 있으라.
먼저 내면을 바꾸라. 외면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말라. 쉬운 것이 좋은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내면에 집중하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 하시리라"(마 6:33; 눅 12:31)

마음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사업 때문에, 시장 때문에, 관계 때문에 걱정 근심이 떠날 날이 없다. 그러니 수도원이나
     산중으로 들어갈 일이다. 거기에는 아무것도 걱정할 것이 없다.’
그러나 걱정은 돈 때문에 생기지 않는다.
걱정은 가족이나 관계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외면의 가족과 관계는 모두 구실에 불과하다.
가령 수도원이나 산중으로 들어간다 해도 걱정은 끊임없이 대상을 찾아낸다.

뒤죽박죽 혼란한 마음을 들여다보라.
마음의 혼란은 외부 상황 때문에 생겨난 것이 아니다.
혼란은 그저 내 안에서 생겨났을 뿐이다.
외부의 상황은 하나의 구실에 불과하다.
"마음이 청결한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 5:8)

 

수도에는 단계가 있다.
먼저 정화의 단계이다. 이는 외면의 정화단계이다.
다음으로 조명의 단계이다. 이는 외면을 초월하는 내면의 정화단계이다. 
합일에 이르면
내면적이었던 것조차 외면적인 것으로 보인다.  
변형일치하는 관상가가 되면 마음조차도 외면적인 것으로 보인다. 
합일을 이루면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뜻이 나의 것이 된다.

 

차분히 현제 있는 곳에서 시간과 여유와 갈망을 가지고 시작하라.
직장에서 가정에서 삶의 터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원하신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요 17:21)
"~그들을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요 17:11)

 

                                                                             2009.  7.  25.

                                                                                                       고려수도원   박노열

 


God Bless Yo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