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목사님은 준치가 아닙니다.

 

나라가 크게 두 가지로 엄중한 시기에 있습니다. 한 가지는 우한폐렴으로 전국이 어려웁지만 그 중에서도 경북 대구지역이 더 어려우니 경북 청도가 고행인 저로서는 마음이 더욱 무겁고 감히 어떻게 위로를 드리며 도울 수 있을까 걱정이 되어 기도하고 있습니다.

아뭏던 조기 대응하지 못한 처지에 남탓만 하고 우한폐렴이라 부르지도 못하게 합니다. 저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우한폐렴이라 부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만 국가가 그리 부르지도 못하게 하고 코로나19”라 부르라 하니 전 총리의 자재님이 의사라는데 코로나는 코로나온다고 하네요.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는데~! 입으로도 코로도 심지어 어디서 나오는지도 모르게 나오니 더욱 문제이겠군요. 주님의 은총으로 속히 처리되었으면 합니다.

책임질 자는 책임지는 정치, 종교 지도자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특히 명색이 그 사이비 종교단체인 신천지 이만희를 보며 가짜는 모두 가짜로 통한다. 사탄도 하나님과 방불한 가짜요. 마귀도 그러하다. 그들의 통치를 받는 세상 사람들 중에도 그런 사람이 많다고 보여지고 특히 지도자가 그러할 때 나라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생각해 봅니다. 이럴 때 바로 기독교인들과 지도자들도 각성하고 자신을 돌아보며 기독교 우리 자신과 나라의 지도자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할 때가 이미 멀리 지나왔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한 가지는 4.15총선을 앞두고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라의 지도자 아니 우리의 대표들을 또 다시 잘 못 선출하겠는가? 우리는 이번 기회에도 사울 같은 자를 선출할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다윗 같은 분을 선출할 것인가?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지혜를 주시고 우리를 감동시켜 주셔서 우리의 손이 하나님의 손에 이끌림을 받기를 원합니다.

이 엄중한 총선. 국민투표가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더욱 신중을 기해야 할 것입니다. 나 한 사람의 생각이 아니라 이 나라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하실까? 우리 기독교인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하실까? 하나님께서 나라와 국민 그리고 기독교와 우리를 위해 하나님은 무엇을 준비하고 계실까요? 나의 선입감이나 지식이나 신앙이 무엇을 요구하고 있을까요? 그러나 이번엔 기도하면서 주님의 마음을 혜아려 봅시다.


우리 어머니가 아직 살아 계시니까 나야 산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벌써 우리 나이로 74이 되었으니 작게 산 것은 아닙니다만 그 중에도 늦게 신학교를 가서 목회를 하게 되었지만 개척시작하여 목회한지 30여년이 지나고 조용히 되돌아볼 때마다 그동안 더 배웠어야 하는데 죄를 많이 지었다는 생각이 더 큽니다. 만약에라도 젊어져서 지금 다시 시작한다면 목회자로서 인문학을 더욱 공부하고 싶습니다. 라틴어도 공부하고 싶고, 심리학도 공부하고 싶고, 철학도 공부하고 싶고, 하고 싶은 것이 많은데 그 중에 영성신학 중에서도 신비신학을 더욱 공부하고 싶습니다. 왜냐구요? 내가 다른 사람보다 더 잘 알고 더 많이 알고 더 옳게 알아서 잘 지도하여 하나님께로 인도하였다면 좋았을텐데 그렇지 못한 것이 죄스럽습니다.


고의는 아닌데도 지나고 보면 거짓말 한 것이 상당하더군요. 매주 설교도 녹음해서 듣고 잘 못된 부분은 다음 주에 고쳐주곤 하지만 그것보단 실수가 없었어야 하는데~~~! 몰론 원고가 없는 설교라서 항상 주의를 해도 실수가 따를 여지가 있어요. 그리고 한 가지 요즈음은 관상기도라는 기도 즉 신비를 전하고 있어서 더욱 조심 스럽답니다.

만약 (1+2-3)x4÷5=0과 같은 것이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그렇다면 신비가 아니지요. 신의 비밀을 어찌 바로 알 수가 있겠습니까? 다만 좀 더 가까운 그리고 절대 멀리 나간 나쁜 해석을 하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많은 독자들 앞에 무슨 넉두리냐구요! 그렇군요. 죄송합니다.


사실은 지나오면서 관상기도를 지도하는 동안 1,500여 형제자매가 다녀갔습니다만 특히 대부분이 목회자님들이라서 더욱 힘들기도 하였습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하나님 앞에서 정말 목회자도 성도도 너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목회자님들이 하나님을 더 잘 알고 잘 모실 것 같았는데 꼭 그런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목회자님들은 비록 아직 그 단계에 도달하지 못했다할지라도 어느날 깨닫게 되고 하나님께서 은총을 베푸시면 놀라운 역사를 읽으킬 것이라고 믿습니다. 찾아오시는 성도님들께 자주 드리는 말이 "썩어도 준치다눈 말을 하게 됩니다. 그처럼 비록 목회자들이 아직은 아니라도 곧 준치가 될 것이라고 말해주곤 합니다. 성도님들께서 자주하는 질문들 중에 우리 목사님은요~! 하는 말이 있기 때문이지요. 이 글도 사실 독자가 대부분 목회자님들이겠지요. 그렇습니다.

성도님들이 기도하면서 목회자님들을 준치로 만들어야 합니다. 목사는 준치가 아닙니다. 성도님들이 기도하면서 지원하고 후원해서 준치로 만드십시오. 성도가 특히 장로님들이 준치가 되면 목사님들도 준치가 됩니다. 나라도 국민이 깨어나면 지도자들이 정신 차립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성도님들이 자기들은 피라미이면서 목사님은 준치가 아니라고 합니다. 당연하지요. 준치는 생선이니까요! 성도님들 목사님들 공부시키시고, 기도시키시고, 운동도 시키시고, 교회행정은 부교역자들이 하고 목회자를 준치로 만드십시오. 그리고 준치를 찾으십시오. 준치는 없습니다. 강물이 흘러 바다에 이르면 준치가 보입니다. 그래서 저는 성도를 준치로 만드려 합니다. 누가 준치입니까? 바다보다 넓은 하나님과 가까운 자가 준치입니다.


하나님과 가깝다. 참 어려운 말입니다. 이 글 읽으시는 동안에 저의 말을 신학적으로 듣지 마시고 구어적 혹은 비유로 들어주십시오. 하나님은 참으로 멀고도 가까이 계신 분이십니다. 어떻게 하면 그분과 가까이 교제할 수 있을까요? 그분은 우리를 신부로 부르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분을 신랑으로 모시는지요. 내담자에게 종종 질문해 봅니다. 그분을 신랑으로 모신다는 분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모두 하나님으로 모십니다. 그래서 하나님 하면 하늘을 처다봅니다.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은 어디 두시고~! 서방님은 집에 두시고 공원에 나가서 서방님 찾으시는 것 같아요. 산에서 목이터지라고 주여! 하고 부르시면 대답하실까요? 다 서방질 하는 겁니다. ㅋㅋㅋ. 그것은 아니고요. 너무 딱딱해서~~!!!


하나님은 내 안에 계서서 이 사람아 나 좀봐!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하십니다. 무슨 나쁜 일을 해서 회개하라 할까요? 성도님들이 서방님은 집안에 두시고 산으로 들로 공원으로 나가서 서방님하고 외치니 서방님도 모른다고 회개하라는 것이 아닐까요? 그분은 내 안에 계십니다. 내 안에 계셔서 지금도 우리를 초청하고 계십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3:20) 주님 지금 문 밖에 계십니다. 어떤 분은 아직도 대문 밖에 서 계시게 하신 분도 있겠지요. 신랑되신 그분께서 내가 문 밖에는 대문 밖에 아니라 마음 밖이랍니다. 즉 우리가 우리의 양심 안에서 양심과 대화하시는 성령 하나님께 귀 기울이지 않고 우리의 마음이 갖가지 욕망과 욕심 등으로 가득하여 그곳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들은 다 우리 주님 발 앞에 벗어내려 놓아야할 것들입니다. 그것들은 다 우리의 짐들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이 세상 욕망과 욕심의 짐을 벗어버리고 가볍게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즉 내 안에 계신 주님을 향하여 내 마음을 집중하는 것이 마음의 문을 여는 것입니다. 그리만 하면 그 다음은 주님이 알아서 들어가서 그와 더불어 먹고 마시겠다는 것입니다. 즉 주님이 내 마음 속에 들어와서 내 마음과 더불어 하나 되어 일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그분이 일하시도록 맡기면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을 몰라서 길거리에서 들에서 산에서 신랑을 찾고 있습니다. 어떤 분은 등불 들고 찾아다니다가 기름이 떨어질까 기름 구하러 가시는 분들도 있겠지요. 지금까지 준비한 기름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이제 그분에게로 나아가십시오. 내 안에 계신 주님 그분께 나아가십시오. 아직도 준비되지 않으신 분이 있다면 마을로 가셔서 기름 준비하십시오. 그런데 어떻게 나아가냐구요! 신부는 잘 몰라요. 신부는 그냥 들러리가 인도하는 대로만 하면 됩니다. 제가 지금 들러리 역할을 할께요. 사실 장님을 안내하는 어린아이가 되고 싶은데 그리 말하면 내가 장님이냐고 화내시면서 건방진 놈 하실 것 같아 그냥 들러리라고 표현했습니다. ! 혼인집에서 신부를 안내하는 들러리의 심정으로 말씀 드리오니 이해해 주십시오. 아하! 요즘은 신부들이 용감하게 혼자 웃으며 들어가더군요. 조금전만해도 아버지 손에 안내되어 갔는데~~! 저는 옛날 사람 구식 혼인이야깁니다.ㅋㅋㅋ


어쨓던 신부는 들러리의 안내대로 얌전하게 나아갑니다. 그리고는 신랑에게 인도됩니다. 신부가 예식장에서 옛날 애인 이름을 부르며 두리번거리다가 되돌아서는 것을 생각해 볼까요? 파혼이지요. 아니면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어버린다고 생각해봐요. 이런 혼인잔치가 어디 있겠어요. 그런데 우리가 바로 그런 사람이라구요. 주님이 예식장 가장 깊은 곳에 주례 앞에 서 있는데 신부된 우리는 우리 애인 생각하고 있으면 그 잔치 행복할까요? 예식장에 나아가는 신부는 과거의 남자를 잊어버리고 오직 혼인할 그 신랑만 바라보며 사뿐사뿐 걸어가서 그분에게 인계되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사무엘이라는 신부를 소개합니다. 그는 신랑이 부를 때 그 음성을 몰라서 아버지(제사장)를 찾아갔습니다. 두 번 세 번 찾아가니 아버지가 신랑을 만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가서 자거라 자다가 그분이 또 다시 부르거던 하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사무엘이 아직 하나님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여호와의 말씀도 알아듣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엘리 제사장이 가르쳐준대로 다시 잠을 자는데 "여호와께서 임하여 서서 전과 같이 사무엘아 사무엘아 부르시는지라 사무엘이 이르되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니,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이스라엘 중에 한 일을 행하리니 그것을 듣는 자마다 두 귀가 울리리라"(삼상 3:10) 먼저 들을 귀를 준비하고 나아가야 합니다. 그것은 무엇이든 말씀하시면 듣겠다(순종하겠다)는 결심입니다. 이 들을 준비가 되신 분들은 무거운 짐을 다 내려놓으시고 조용히 그분 앞에 앉으십시오. 혼인예식장에서 신부가 신랑 앞에 조용히 서듯이 나아가십시오. 신부가 다른 짐을 지고 나아가면 불행합니다. 과거는 다 버리시고 이제부터는 신랑을 위해서 그분과 일생을 함께할 각오로 나아가십시오. 그분께서 손을 잡으시고 꼭 앉아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한다고 속삭이실 것입니다. 들으십시오.

이 일을 우리들의 위대한 신앙 스승들은 행해 왔습니다. 그분들은 길을 몰라서 사막으로 산으로 찾아갔습니다. 요행이 몇 몇분들은 그분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후대에 전하기도 했습니다. 그분들은 각자가 찾은 길이 대부분 다릅니다. 그렇지만 자세히 보면 상당히 같은 길을 걸어갔습니다. 그리고 후대들이 그분들의 길을 정리하고 이론화하고 실천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저와 여러분이 이 길을 답습하고 있습니다. 각자가 조금씩 다르지만~~~!!!


그렇다면 어떻게 마음을 그분께로 집중할 수 있을까요? 제일 좋은 방법은 본인이 터득해야만 합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터득한 방법들이 있으나 다 알 수는 없습니다만 기독교인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것이 상당히 도움이 됩니다. 성경을 천천히 읽어가다가 마음에 부닥치는 부분이나 단어 등 느낌이 있는 부분에서 중지하고 조용히 묵상하고 묵상이 끝나면 또 다시 이어가고 하다보면 나도 모르게 모든 잡념이 사라지고 마음이 조용해질 것입니다. 이때를 잠심상태라 표현하는데요. 이런 상태에서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볼 수도 있습니다. 즉 우리의 마음 상태가 주님께서 말씀하시고 활동하실 수 있는 상태가 된 것이지요. 마치 태풍의 눈같이 조용하고 고요합니다. 이런 상태를 잠심상태라 하고요. 태풍의 눈의 중심은 수직으로 올라간다는 사실도 재미있습니다.

저는 어릴 때 팽이를 많이 가지고 놀았는데 팽이를 돌리다보면 팽이가 돌아가는 것 같으면서도 가만히 서 있습니다. 그때 어린아이들이 팽이가 잠들었다고 합니다. 팽이가 잠든 것 같이 조용하지만 사실은 괭장한 속도로 돌고 있습니다. 가속도가 떨어지면 죽습니다. 그와같이 기도하는 분들도 보면 잠자는 것같이 고요하지만 그 정신은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하면서 집중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건드리거나 가속도가 떨어지면 즉 집중도가 떨어지면 팽이가 쓰러지듯 분심 속으로 빠지고 맙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께 집중합니다. 사무엘과 같이 주님 말씀하십시오. 종이 순종겠습니다하는 마음으로 그분 앞으로 나아갑니다. 말씀을 하시던지 보여주시든지 모든 것은 그분의 의지이지 우리의 의지대로 대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분이 보여주거나 들려주시거나 간에 순종하려는 자세로 나아갈 뿐입니다.” 말씀이 없으면 현행대로 진행하면서 기도합니다.


묵상하는 방법도 여러가지입니다만 주로 성경을 읽거나, 과거에 읽은 은혜된 성경구절을 묵상하기도 하고, 주님의 마지막 1주일간의 사건들을 묵상하기도 하고, 주님의 십자가상의 사건을 묵상하기도 하고, 매일 성경을 읽어가면서 묵상하는 것이 좋습니다. 장소와 시간의 여유만 있다면 말입니다. 그러나 언제나 좋은 여건은 아니기 때문에 주님의 마지막 1주 혹은 십자가상의 사건 등 주님의 고난을 묵상합니다. 그 외에 임의의 한 곳을 집중하기도 하고, 한 단어를 머릿 속에 떠올리기도 하고, 각양각색입니다. 본인이 가장 쉬운대로 하시면 됩니다. 이 방법은 기도가 아닙니다. 정신집중방법이지요. 집중해서 주님을 향하는 것이 기도이지오. 그러나 이런 방법으로 시작하다보면 잠심에 이르게 됩니다. 그리고 기도 중에 마음이 흩어지지면 즉 집중이 안되면 다시 묵상으로 돌아가십시오. 묵상을 오래하다가 보면 묵상을 하지 않아도 자연적으로 관상기도에 이르는 경우가 오게되면 그리하시면 됩니다. 어렵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관상기도에서 우리가 할 일은 한 마디로 말하면 주님 말씀하십시오. 내가 순종하겠습니다 하고 주님 앞에 나아가 주님을 향하여 내 마음을 집중하는 것입니다. 별로 어렵지도 않은 보편적인 일이기에 더욱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모든 성도가 나름대로 잘 훈련하여 하나님을 체험하며 주님의 뜻에 따른 삶으로 주님께 영광 돌리시기를 삼가 빕니다.

예수님 찬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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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d Bless Yo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