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과 덕의 상호관계(데레사 중심)




                                        완덕의 여정에 있어서 관상과 덕의 상호관계

                                                         (예수의 데레사를 중심으로)


                                                                              김준년 신부님의 학술논문 중에서



II. 덕과 관상의 상호관계성

 

2.1 덕에서 관상으로

 

관상에로 나아가기 위하여 덕은 필수적이다. 사실 세례성사(세례식)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어진 신학적인 삼덕의 성장 없이 관상은 불가능하다. 한편 관상 역시 이 세 가지 덕의 성장을 위하여 우리에게 주어지는 특별한 선물이라고 해야 될 것이다.

고백록에서 이러한 여정을 찾을 수 있다. 아우구스티노에 의하면 하나님의 관상에 이르기 위하여 상승하고 정화될 필요가 있다. 목표에 도달하기 위하여 지식과 철학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수덕적이고 신비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관상 즉 "하나님을 봄"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우리를 정화시키는 신앙과 희망과 사랑을 거쳐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분별, 정의, 용기, 절제의 사추덕도 필요하다.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사람이 이것이 인간의 노력의 열매 만 일수는 없다는 것을 알고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다는 것을 알 때만이 이루어진다.

관상에 도달하기 위하여 신앙과 희망과 사랑 이 삼덕이 필요하다. 관상이 지성적인 관조이기는 하지만 결코 사랑을 배제하지는 않는다. 다시 말하면 "관상적인 삶은 이성적인 행위에 있다. 비록 본질적으로는 지성적인 행위이기는 하지만 관상은 의지적인 활동 즉 사랑을 배제하지는 않는다. 사랑스러운 의지는 원인적인 원리로서 그리고 목적으로서 관상에 영향을 미친다."

십자가의 성 요한은 이성과 의지가 함께 나아가고 서로 존재의 완성을 향해서 도와주는 것처럼 신앙과 사랑도 그들 사이에 긴밀히 관계되어 있어셔 서로 영향을 준다고 분명히 확인했다(2 N 13, 3). 신앙은 사랑을 탄원하고 촉진하고 사랑은 신앙을 분명히 해준다. 사랑하면서 생동하고 약동하는 신앙에 도달한다. 그리고 순수한 신앙은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강화시킨다. 사람이 신앙 안에서 뛰어나게 되면 그만큼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주입적 사랑도 뛰어나게 된다. 더 큰사랑을 소유하게 되면 될수록 그만큼 하나님은 그를 비추시고 그에게 성령의 선물을 주시는데 이는 사랑이 그러한 퉁교의 수단이고 원인이기 때문이다(참조. 2 S 29, 6).

덕들은 애덕 안에서 피어오르고 향유한다. 그리고 사랑 안에서 기초되고 보존된다. 애덕은 덕들을 연결시키는 중심이다. 또 그것들을 배양시키는 영양물이며 그것들을 분출시키는 힘이다. 사랑은 영혼 안에서 덕들을 묶고 견고케 한다. 그리고 바울 사도가 애덕은 완덕의 끈이라고 말했듯이 그것들을 지원하다(고전 13:13. 완덕의 길: 30, 9).

데레사는 자기 안에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그리고 애덕이 열렬하면 열렬할수록 그리고 매일 그분에 대한 영예와 영광의 갈망이 자라날수록 그분을 보고 싶다는 갈망은 강렬해지고 가끔 미친 듯한 충동을 갖게 되고 커다란 걱정과 사랑의 특별한 효과들과 함께 죽고 싶다는 갈망을 갖게 되었다.

또한 데레사는 늘상 더 큰 완덕의 길을 따르고 싶어 하고 열렬하게 우리에게 아주 작은 의지적인 죄까지도 짓지 못하도록 설득하였다. 이와 같이 관상에 도달하기 위하여 신학적인 삼덕 즉 믿음, 소망, 사랑이 필요한 것은 물론이고 윤리덕도 갖추어야 한다. 실지로 토마스 자신도 관상에 있어서 윤리덕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윤리덕들은 준비로서 관상생활에 들어간다. 본질적으로 관상생활을 구성하는 관상의 활동은 영혼의 집중을 지성적인 것에서부터 감각적인 것으로 불러내는 정열들의 폭력에 의해 방해를 받게 된다. 그리고 외부적인 동요에 의해서 방해를 받게 된다. 그래서 도덕적인 덕들은 열정의 복력을 제거하고 외부적인 일들의 동요를 진정시키기 위하여 필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윤리덕들은 관상생활의 준비에 속하게 된다.

성녀는 기도의 성장에 있어서 그리고 특별히 보다 높은 단계로 올라가는데 있어서 겸손의 부족만큼 그것을 방해하는 것이 없다고 말한다. 성녀는 관상을 위한 필수적 준비로써 그리고 참됨의 적절한 기준으로써 겸손을 제시한다. 또한 성녀는 완덕을 향한 비약에 있어서 아량성과 항구함에 대하여도 이야기한다.

 

"겸손이야말로 기도에서 가장 큰 구실을 하는 것으로서, 이미 말할 바와 같이 어떻게 하면 이 덕을 잘 딱을 수 있는지를 알아두는 것이 긴요할뿐더러, 기도에 힘쓰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그것은 절대로 필요한 것입니다. 아닌게 아니라 정말 겸손한 사람 같으면 관상에 도달하는 이들만큼이나 자기가 정말 거룩하다는 생각을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만일 주께서 여러분을 이 길로 인도하려 하신다면 스스로 준비나 잘 하여둘 것이고,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특히 요구되는 것이 겸손입니다"(완덕의 길: 17, 1). "그러나 겸손과 극기와 이탈, 그리고 다른 덕들이야말로 항상 틀림이 없습니다. 겁낼 것은 조금도 없으니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러니 여러분도 훌륭한 관상가들처럼 완덕에 나아가기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완덕의 길 : 17, 4).

 

아우구스티노 역시 관상에 도달하기 위하여 정화의 과정 속에서 윤리적인 덕을 닦을 필요성에 대하여 언급하였다. 정화 작업은 아우구스티노적인 언어로써 세 가지 영역을 향하여 도식적으로 방향 지워진다. 우리는 이것들을 고행, 집중, 겸손으로 부를 수 있다. 이 세 가지 형태를 심화하는 것은 아우구스티노의 모든 수덕적인 측면을 말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성녀 데레사의 글을 통해서 성화의 과정을 보게 되는데 먼저 수덕의 길을 걷게 되고 그 다음 모든 경험의 여정을 도와주신 주님과의 만남을 완수하기 위하여 신비적인 길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두 가지 다른 운동들을 관찰하게 된다(참조, 영혼의 성: 6, 7궁방). 이 전에 영혼은 그의 상층부로 올라가도록 불림을 받았다. 지금은 그의 중심부에 들어가도록 불림을 받는다. 첫 번째 움직임은 수덕과 고행, 정화가 이루어진다. 두 번째 움직임은 통교(교통), 친밀함 평화이다(참조, 영혼의 성: 7, 1. 5).

한 마디로 데레사의 확언은 이것이다. 하나님은 만일 그에게 우리 자신을 완전히 내어 주지 않는다면 그분 역시 당신 자신을 완전히 내어 주시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에게 하는 자신의 완전한 선물은 데레사가 가르친 여러 덕들에 의하여 실현될 것이다.

 

2.2. 관상에서 덕으로

 

먼저 관상에 도달하기 위한 준비로써 신학적인 덕들과 윤리적인 덕의 필요성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이제는 관상이 이들 덕들과 어떤 관계를 갖고 있는 가에 대하여 살펴보자. 성녀 데레사가 모든 감각에 있어서 그리고 내적인 영역에 있어서 영혼 안에 생산된 효과들의 기술에서 그리고 관상의 여러 단계들에 대하여 그녀가 한 찬사에서 그녀는 관상을 영적 생활의 성장을 위한 효과적인 요인이라고 분명하게 강조하였다. (참조, 자서전: 19, 5; 21, 1; 25, 12; 33, 5: Relazione 2,3; 3. 8; 4, 5).

하나님과의 통교(교통)는 신앙의 인식적인 풍요를 가져다주고 계시된 자료의 이해 그리고 신학과 경험의 조명 그리고 신비적인 통찰이 가능해진다. 데레사는 환시의 열매로써 살아 있는 신앙에 대하여 자주 말한다.

 

"당신의 온갖 은총은 그에게는 너무나 과분하고도 아낌없이 주신 은혜로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자기는 이승에서 몸을 둘 곳조차도 없는 불초한 자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지체치 않고 성사들에 의지합니다. 당신께서 거기에 두신 효능을 발견할 때 싱싱한 믿음이 솟아납니다. 이 상태에 있어서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위해서 목숨이나 명예를 잃는 것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신하들과 한층 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일할 의무를 지닌 임금님들에게 그건 얼마만한 보물입니까? 그분들이야말로 다른 모든 사람들의 모범이 되어야 하니 말입니다. 믿음을 한 발자국이라도 더 나아가게 하며 이단자들에게 얼마간이라고 빛을 주기 위해서 그들은 천개의 왕국이라도 희생할 각오를 가질 것입니다"(자서전: 19. 5, 21, 25. 12).

 

그리스도인의 희망 역시 하나님과의 통교(교통)에서 발생된 성장 안에서 아주 정확한 특징을 갖게 된다. 자서전에 나오는 데레사의 신비적인 첫 경험을 읽을 때면 강한 인상을 갖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는 하나님을 보려고 하는 주체할 수 없는 갈망이 표출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것은 하나님 왕국의 봉사를 위하여 활동적인 기다림으로 바뀌게 된다. 그리고 만일 영혼들의 선을 위해서라면 종말론적인 것보다는 이 땅에서 건설적이고 희망의 성격의 형태로서 교회를 위하여 봉사하고자 하는 것으로 바뀌게 된다(참조, 자서전: 40, 20. 23, 왈덕의길: 38-'39. Relazione, 6, 9).

신학적인 사랑 역시 하나님과의 통교(교통)의 제왕적 선물로써 마음 안에서 강하게 분출된다. 데레사는 많은 그의 글에서 자기 안에 하나님 사랑의 성장의 사실을 아주 강하게 설명하는데 이러한 사랑이 선물이면서 새로운 것임과 힘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성녀는 영적 성장에 있어서 기도의 단계에 대해서 설명하는데 그것들 각각이 영혼 안에 생산하는 효과들에 대하여 기꺼이 설명한다. 특별히 덕의 성장과 움직임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정적의 기도에 대하여 자서전(14, 5-615, 14)에서 그리고 영혼의 성(4, 3, 9)에서 강조되었다. 그것은 지상적인 위안으로부터 분리 그리고 [보속할 마음(X)] 속죄할 마음, 자신에 대해 낮추는 의견, 그리고 노예적인 두려움의 상실 그리고 마지막 구원의 신뢰 등이다. 그리고 동시에 영혼은 넓어지고 하나님께 봉사하는데 있어서의 그의 에너지가 성장한다.

영혼의 성 마지막 부분에서 데레사는 하나님과의 일치에서 오는 효과가 어떤 것인가를 기술한다. 여기에서 데레사는 거룩함의 특징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하나님께 침잠해 있는 영혼은 덕을 갖추게 되는데 자기를 잊고 하나님을 향하여 신학적인 덕들을 위하여 방향 지워진다. 그리고 이러한 신학적인 덕들은 6궁방의 정화와 조명의 도가니를 거친 것이다. "첫째는 나의 잊음입니다. 앞에서도 말했습니다만, 정말 내가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그 잊음입니다. 둘째 결과는 괴로움을 많이 당하겠다는 욕망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런 영혼들은 박해를 당할 때 몹시 마음이 기뻐지고, 위에서 말한 것보다 훤씬 더한 평화를 간직하게 됩니다. 자기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들을 원수처럼 생각하기는커녕 오히려 특별한 사랑을 베풀어 줍니다"(참조, 영혼의 성 7, 3).

또한 하나님이 그녀 안에서 많은 일을 하심에도 불구하고 정작 그녀 자신은 자기에 대하여 낮게 평가하였다. 비록 그녀의 병약함에도 불구하고 주방에서 일을 하였고 스스로를 집에서 비천한 자로 여기고 천한 일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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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d Bless Yo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