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성도의 기도와 회개하는 삶에 대한 생각

 

   원고 의뢰를 받고 보니 먼저 그동안의 목회에 대한 자신을 성찰하게 됩니다. 회고하건데 비록 뒤늦게 목회를 시작했지만 벌써 나이 73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지금부터 쓰려는 글은 정확한 자료에 의한 것이 아니라 저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느끼고 이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들을 표현하려 합니다. 혹시 잘 못된 것이 있으면 책망하시고 지도해 주시길 바랍니다. 받들어 고치겟습니다.

   저는 목회기간 동안 항상 성도의 신앙의 실천에 대해 관심을 가졌습니다. 제가 볼 때에는 우리나라 성도님들의 많은 부분이 지식은 가득하고 표현은 잘 하시는데 신앙적 삶이 추분치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 부분에 많은 고심을 하다가 교회의 목표를 수도원 같은교회, 수사같은 성도라는 표어로 목회 해 왔습니다. 부끄러운 것은 저 자신부터 그렇지 못한 부분이었습니다. 그래서 기도하며 회개하고 또 기도하고 회개하고 하면서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마침내 나 혼자만이라도 먼저 수도해 보고자 하였고 제가 터득하고 하나님을 체험한 일들이 나 혼자만 같고 있지 말고 관심있는 분들에게 전해주자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관상기도 였습니다.

고려수도원은 관상기도를 영성을 하는 재가 수도원으로 출발했습니다. 관상기도만이 성도의 영성생활을 위한 도구라는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만 관상기도는 성도의 영성생활에 큰 변화를 주게 될 것입니다. 이제 어찌하여 도움이 되는가를 기도와 회개의 관점에서 잠깐 살펴 보겠습니다.

 

1. 기도(祈禱)에 대해서: 사실 제가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의 관점에서 살펴보렵니다. 먼저 국어 사전을 찾아보면 기도(祈禱)종교적 대상(하나님)과 교제와 화구를 하는 것’, ‘신명에게 빎으로 정의되어 있습니다. 참고로 기원(祈願) ‘바라는 일이 이루어지기를 빎입니다. 그럼 기독교에서는 기도를 어떻게 정의합니까? ‘하나님과의 대화라고 합니다.

   다시 우리의 기도생활을 생각해 봅시다. 우리의 기도의 대부분은 주여 삼창하고 몇 분 동안 통성으로 기도하다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하곤 벌떡 일어나 손살같이 빠져 나갑니다. 그리고는 응답받지 못했다고 하기도 하고 하나님 응답에 소원을 두고 기도 합니다. 그렇지 안드라도 밤새껏 주여 이것 해주십시오. 저것 해 주십시오(저는 이런 기도를 하늘천 따지 기도라 합니다) 하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까? 그러나 저는 오래전에 하늘산 기도원을 다니며 기도 응답 받는 사람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강사목사님은 나무 뿌리를 뽑으라 하셨고 당시 저는 그것이 궁금해서 밤새껏 주위에서 나무 뿌리를 뽑는 사람을 살펴 보았습니다. 그들 중에 대부분은 하늘천 따지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중에 한 두 분이 신기하리 만치 나무를 붙들고 죽어라고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나는 도저히 저래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1015분 정도 지나는데 그렇게 열심히 부르짓던 기도 소리가 뚝 멈추고 마치 매미처럼 밤새 꿈적도 하지 않고 나무에 붙어 있었습니다. 저는 그 분을 눈여겨 보고 예배시간에 그 분을 찾아 부근에 앉았는데 강사분께서 어젯밤에 응답받은 사람 손들라 하니 그분이 힘차게 손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여러번 해 보았는데 하나님을 체험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저는 홀로 삼각산을 찾아다닐 땐 무의식 속에서 하나님을 체험한 일이 너무 많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을 드리기 위해서 길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기도를 할 때 이것 달라 저것달라 하고서는 받을 시간 여유를 가지지 않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하고 기도를 마치고 제빨리 돌아갑니다. 이것은 기독교가 정의하는 기도에 부족합니다. 더군더나 국어사전의 정의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국어사전에 비교한다면 기도가 아니라 기원에 해당됩니다. 기독교의 정의에도 못 미칩니다. “하나님과의 대화라면 우리의 기도는 대화가 아니라 일방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가 좀 더 갱신되어야 하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여야 온전한 기도를 드릴 수 있을가요?

   하나님께서는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기도에서 우선순위가 있습니다. 먼저 구할 것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그렇습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하나니의 뜻을 실천하기 위해 금식하며 통성으로 묵상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즉 이것달라 저것달라 하는 것은 이방인의 기도라 책망하셨습니다(6:30~33). 그러므로 먼저 나의 필요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그분이 뜻을 깨달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 그분의 세미한 음성을 듣도록 조용해야 합니다.

성경에 선지자들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 크고 강한 바람, 지진, 불이 다 지나고 조용한 가운데 세미한 하나님이 음성을 들었습니다(왕상 19:11~12). 우리도 주위의 환경문제도 있지만 무엇보다 우리의 마음이 조용히 침묵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짤라 버리라 합니다만 그것은 우리의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에만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여기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자세를 잠깐 언급하겠습니다. 먼저 사무엘 상 310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사무엘의 자세는 사무엘이 이르되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비로소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 것은 당시 타락한 제사장 엘리 제사장이 사무엘을 세 번씩이나 부르는 것을 보고 깨달았습니다. 비록 타락한 제사장이라도 속된 말로 썩어도 준치라고 제사장이라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태도는 알고 있었지요. 엘리 제사장이 가르쳐 준대로 말씀 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순종)나이다하고 주님 앞으로 나아갈 때(삼상 15:22 참조) 하나님은 기뻐하시고 그 기뻐하심으로 말씀 하실 겁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필요도 채워 주실 것입니다.

   저는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 주님의 뜻을 깨닫고 그분의 의도대로 순종하여 행하면 우리의 필요는 주께서 기쁨으로 채워 주십니다. 그러므로 관상기도는 주께 조용히 나아가 그분을 체험하고 그분의 뜻을 구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상기도를 마치기 전에 주님이 뜻대로 행하기 위해 필요한 기도를 이어서 하게 됩니다. 시간 여유가 있을 때는 간구와 중보 기도를 충분히 하고 시간이 부족할 땐 기도 제목만이라도 빠지지 않고 기도합니다. 이것이 마태복음 633절이 말씀하시는 온전한 기도라 생각합니다.

   온전한 기도의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전자(하나님의 뜻을 구하는)는 뒤로 하고 후자(이것달라 저것달라)에 매이고 있으니 불완전한 기도로 세월을 보내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이제 우리 기독교의 기도의 패턴이 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한 번 성찰하시어 들풀도 입이시는 하나님께 먹을 것 입을 것 다 맡기시고 먼저 그분의 뜻을 구하고 그분이 뜻에 다른 필요와 중보 간구기도를 올리시는 교회와 성도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큽니다.

   우리가 세계에서 제일 기도를 많이 하는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삶은 왜 이처럼 성경적이지 못한 부분이 많을까요. 온전한 기도를 드리지 못하는 부분과 우리가 회개하는 삶을 살지 못하고 있다고 봅니다. 이제 회개에 대해 생가해 볼까요!

 

2. 회개에 대하여 잠깐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리는 기도를 열심히 하는 만큼 회개도 열심히 합니다. 가톨릭의 고해성사를 신부에게 하는 것은 교리상 잘못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 직고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삶은 왜 변화가 없을까요?

   우리는 회개를 하나님께 고백하는 것으로 만족해 하고 있는 측면이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회개는 열심히 하지만 생활에 변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뿐만 아니라 교회가 징계를 하지 않고 있는 것도 하나의 큰 원인이라 봅니다. 그래서 교회가 좀 더 신앙생활에 관심을 가지고 징계와 회개를 강조해야 한다고 봅니다. 징계는 회개를 촉구시키는 수단 아닐가요!

   이제 제가 생각하는 회개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먼저 우리 교회의 성도들을 보면 날마다 기도할 때마다 회개를 합니다. 하나님께서 무척 기뻐하실지도 모릅니다. 그런 그들은 그것으로 만족해 버립니다. 이로 말미암아 회개를 해도 생활의 변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회개를 말할 때마다 하나님께 고백만 하지 말고 고백한 바를 실천하라고 주장합니다. 성경이 말씀 하시는대로 기도하다가 잘 못된 일이 생각나거던 주님께 회개하고 그 상대에게 찾아가 고백하고 용서를 빌어 용서를 받으면 하나님도 기뻐하시고 용서를 하신다고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혹 피해를 끼친 것이 있으면 상대를 찾아가 보상하고 용서를 빌어 용서를 받아야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땅에서 풀었으니 하늘에서도 푸시고 용서해 주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삶이 이처럼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삶을 살아갈 때 하나님게 영광이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는 입으로만 회개하고 행동으로 옮기지 않으므로 과연 우리의 죄가 사함을 받았다고 생각하시는지 물어보고 싶습니다.

그러나 관상기도는 이 회개를 정화의 관점에서 말합니다. 즉 우리의 생활의 변화 회개하는 삶이 뒤따르지 않으면 입으로만의 회개는 정화 되지 않느다는 사실과 정화되지 않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임제 체험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강조함으로써 생활의 변화를 촉구합니다. 물론 관상기도 한다고 다 정화된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정화를 강조함으로 회개하고 실천해 나가는 삶을 통하여 조금씩 성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미 관상기도를 배워간 1337명 중 저와 함께 열심히 수도(수련) 하는 사람들 중 열심히 살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삶의 엄청난 변하를 가져오는 분이 있으니 어찌 부정할 수 있겠습니까?

   하고 싶은 말을 많지만 지면 관계로 여기서 마쳐야 할 것 같습니다. 마칙 전에

마지막으로 정리한다면 우리의 기도는 먼저 하나님의 뜻을 혜아리고 다음에 우리의 기도 중보기도나 간구기도 등을 하는 것이 온전한 기도라고 말씀 드리며, 기도하는 사람은 반드시 회개를 하여야 하는데 하나님께 고백만 하지 마시고 행동으로 옮겨야 하다는 사실을 강조 하고 싶습니다.

   아마 우리나라 같이 기도 열심히 그리고 많이 하시는 성도님들이 조금전 드린 말씀의 부분만 고쳐가시면 성도 자신은 물론이고, 이 나라까지 변화시켜 가실 것입니다. 나 하나의 성화된 삶 만큼 사회도 바뀌지요. 한분 한분 거룩한 하나님을 체험하시며 기쁜 삶을 누리는 성화된 성도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빕니다.

주님께 영광

                                                                                                                                          201936

 

                                                                                                                                고려수도원에서 박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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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 : 사모신문 원고 A4 3매.hwp




    

 


God Bless Yo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