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을 열어라(머리에서 가슴으로)

 

 

머리를 없애라. 머리 없는 자신을 상상하라. 이것이 터무니없는 소리처럼 들릴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가장 중요한 묵상법 중의 하나이다. 이 묵상을 행해 보라. 그러면 알게 될 것이다. 걸을 때에는 마치 머리가 없이 걸어가는 것처럼 느껴라. 처음에는 상상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머리가 없다고 상상하면 아주 이상하고 묘한 느낌이 들 것이다. 그러나 서서히 당신은 가슴으로 내려가 자리 잡게 될 것이다.

눈먼 사람은 더 예민한 귀를 갖는다. 그의 귀는 음악에 대해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것은 법칙과 같다. 눈먼 사람은 더 음악적이다. 음악적 감수성이 더 뛰어나다. 왜 그런가? 일반적으로 눈을 통해 흐르는 에너지가 막혀 버렸다. 그래서 에너지는 다른 통로를 찾는다. 귀를 통해 에너지가 흐르게 되는 것이다.

맹인은 촉감이 일반인보다 훨씬 뛰어나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눈을 통해 서로를 감지한다. 그러나 맹인은 그럴 수 없다. 그래서 그의 에너지가 손으로 흐르기 시작한다. 맹인은 멀쩡한 눈을 가진 사람들보다 더 감각이 예민하다. 물론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개의 경우는 그렇다. 하나의 센터(, 중심)가 막혀 버리면 에너지는 다른 축(중심)을 통해 흐르기 시작한다.

이런 묵상법을 시도해 보라. 머리 없이 존재하라. 그러면 돌연 당신은 이상한 느낌을 받을 것이다. 난생 처음으로 당신 자신이 가슴에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머리 없이 걸어라. 조용히 앉아서 눈을 감고 머리가 없다고 상상하라. '내 머리가 사라졌다'고 느껴라. 처음에는 상상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서서히 그대는 진짜로 머리가 사라졌다고 느낄 것이다. 그리고 머리가 사라졌다고 느끼는 즉시 그대는 가슴으로 내려올 것이다. 그대는 머리가 아니라 가슴을 통해 세상을 보게 될 것이다.

서양인들이 처음으로 일본에 갔을 때, 그들은 믿을 수 없는 사실을 발견했다. 일본인들은 생각이 배에서 나오는 것으로 믿고 있었던 것이다. 서양식 교육을 받지 않은 일본의 아이에게 "생각이 어디에서 나오니?" 하고 물어보라. 그는 자신의 배를 가리킬 것이다.

수천 년이 지났지만 일본인들은 여전히 머리 없이 살고 있다. 만일 내가 당신의 생각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하고 물으면 당신은 머리를 가리킬 것이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머리가 아니라 배를 가리킨다. 그 이유는 일본인들의 마음이 더 고요하고 차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젠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서양식 사고방식이 전 세계로 퍼져 나갔기 때문이다. 이제 진정한 의미에서 동양은 존재하지도 않는다. 동양은 외딴 섬처럼 여기저기 존재하는 몇몇 사람들의 영혼 속에나 존재한다. 지리적으로 볼 때 동양은 사라졌다. 온 세계가 서양화되었다.

욕실의 거울 앞에 서서 묵상하면서 머리를 없애보라. 자신의 눈을 깊이 들여다보면서 가슴을 통해 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라. 그러면 서서히 가슴의 센터(, 중심)가 작용하기 시작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그대의 인격(personality) 행동 패턴 등 전반에 걸쳐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가슴은 가슴만의 독특한 방식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처음에는 머리를 없애보라. 그리고 두 번째로는 사랑으로 더 충만해져라. 사랑은 머리를 통해 작용하는 것이 아니다. 더 많은 사랑으로 충만해져라. 사랑에 빠진 사람은 머리를 잃어버린다. 사람들은 그가 미쳤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머리가 평상시처럼 작용하고 있다면 사랑은 불가능하다. 머리가 사라져야 한다. 사랑이 작용하기 위해서는 머리가 아니라 가슴이 필요하다. 사랑은 가슴의 기능이다.

아주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람도 사랑에 빠지면 어리석어진다. 그는 "내가 왜 이렇게 어리석은 짓을 하고 있지? 내가 제 정신인가?" 하고 반문한다. 이제 그는 자신의 삶을 둘로 나눈다. 분열을 창조하는 것이다. 그의 가슴은 고요하고 친밀해졌다. 그러나 그는 세상사를 위해 집 밖으로 나오면서 가슴에서 벗어난다. 그는 머리를 갖고 세상 속에서 살아간다. 그리고 충만한 사랑을 느낄 때에만 가슴으로 내려간다. 그러나 이렇게 가슴으로 내려가는 것은 매우 어렵다. 일상 생활 속에서는 결코 가슴으로 내려가지 못한다.

 

어떤 친구의 이야기이다. 그 친구는 큰 교회 목사였는데, 그의 부인이 친구를 보고 말했다.

"제게 한 가지 문제가 있는데 좀 도와줄 수 있겠어요?''

"무슨 문제입니까?"

"제 남편은 당신의 친구잖아요. 그는 당신을 사랑하고 존경해요. 그러니 당신이 그에게 조언을 하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먼저 무엇이 문제인지 알아야할 것 아닙니까?"

"그이는 침대에 누워서도 교회 목사라는 자리를 벗어나지 못해요. 그이는 내게 연인도 아니고, 친구도 아니고, 남편도 아니에요. 그저 하루 24시간 내내 교회 목사라고요."

자신의 신분에서 내려오기란 매우 어렵다. 그것은 고정된 태도를 형성한다. 만일 그대가 사업가라면 그대는 침실에서도 사업가의 면모를 버리지 못할 것이다. 한 사람의 내면에 두 사람이 거주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원할 때마다 자신의 행동 패턴을 즉시 바꾸어 버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사랑에 빠진 사람은 머리에서 내려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니 이 묵상법을 위해서는 더욱더 사랑으로 충만해지라. 사랑으로 충만해지라는 말은 그대가 맺고 있는 모든 관계에 질적 변화를 일으키라는 뜻이다. 모든 관계의 밑바닥에 사랑이라는 토대를 세워라. 모든 관계를 사랑에 기초한 것으로 만들어라. 그대의 부인이나 아이들, 친구와의 관계뿐만 아니라 살아 있는 모든 생명체와의 관계를 더 많은 사랑으로 채워라. 그것은 다만 생명체를 사랑으로 대하는 태도를 고양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어떤 관상가는 움직이거나 걸을 때에 개미 한 마리도 죽이지 않으려고 조심했다. 왜 그랬을까? 그는 개미에 관심을 가졌던 것이 아니다. 다만 그는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왔을 뿐이다. 그래서 모든 생명체를 사랑으로 대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대가 맺고 있는 관계들이 더 많은 사랑에 기초할수록 가슴의 중심이 더 활발하게 작용할 것이다. 그러면 그대는 세상을 전혀 다른 눈으로 보게 될 것이다. 가슴에는 나름대로 세상을 보는 고유한 시각이 있기 때문이다. 마음은 결코 그런 식으로 세상을 볼 수 없다. 그것은 마음에게 있어서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마음은 오직 분석할 뿐이다. 마음은 나누고 구분한다. 마음은 분열을 능사로 여긴다. 그러나 가슴은 통합한다. 오직 가슴만이 통일성을 줄 수 있다.

가슴을 통해 세상을 보면 우주 전체가 하나의 단일체로 보인다. 반면에 마음을 통해서 보면 세상 전체가 원자로 쪼개어진다. 통일성은 사라지고 오직 수많은 원자가 있을 뿐이다. 가슴은 통합의 경험을 선사한다. 모든 것을 한데 묶어 연결시킨다.

과학이 결코 하나님을 발견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과학이 하나님()을 발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과학에 의해 채택된 방법 자체가 궁극적인 단일체에 도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과학의 방법론은 추론과 분석, 구분으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과학은 분자, 원자, 전자를 발견해 냈으며, 이것들 또한 더 작은 단위로 계속 나누어 나갈 것이다. 과학은 결코 전체라는 유기적 단일체에 이르지 못한다. 머리를 통해서는 전체를 보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일도 가슴으로 해야 한다. 머리로 사랑하는 것과는 다르다. 관상가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가슴이 뜨거운 사람들이다. 그 열망으로 하는 것이다. 말로만 하고 행동이 따르지 않는 것도 머리로만 하기 때문이다. 모두 가슴으로 사랑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관상에 이르고 관상적인 삶을 누리자.

 

  참고-가슴을 열어라.pdf



 


God Bless Yo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