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냐? 사역(관상기도)이냐? 어느것을 택할 것인가?


나는 서울신학교와 총회신학원 제85회로 졸업하고, 

대한 예수교 장로회(합동) 경기노회 제139회(1992년) 에서 강도사 인허와

동 경기노회 제 141회(1993년)에서 목사 안수를 맏아 지금까지 목회사역에 임하였다.


2015년 금요일 작은 모임에서 내게 질문하였다.

만약에 관상기도 사역 문제로 선택의 문제에 놓일 때 어떻게 하겠느냐는 것이다.

당연히 경기노회 소속을 떠나는 한이 있어도 목회사역은 관상기도를 택하겠다고 강조 하였다.

이 모 목사는 명예를 위하여 사역을 버렸는데,,,,, 라는 말이 있었다. 답이 필요하겠는가?


지금의 나의 결심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

대한예수교 장호회 총회(합동)에서는 관상기도를 정죄하지 않았다. 다만 주의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뿐이다.

그리고 장신이나 한신 등 타교단에서는 신학교에서 교수님들이 관상기도를 가르치고 있다.


나 자신에 대하여

나는 개량한복 하,동 각 1벌이 있고 이전에 기도할 때 아주 편하여 착용할 때도 있었다.

신호 도구로 손바닥을 치기도 했고, 종을 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이 기도에 별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기도하는 사람들이 쇠소리가 울리는 종소리에 놀라기도 했다.

그래서 좀 더 부더럽게 하기 위해 죽비를 사용하기로 했고 신호도구로 사용하고 있다.

개량한복 혹은 생활한복을 입거나 죽비를 사용하는 것이 무슨 문제란 말인가?

그것들은 하나의 도구일뿐인데......


신학적인 문제로 나무란다면 받아듣고 시정하겠지만

그까짓 도구문제로 다툰다면 승복할 수 없다.


불교가 사용하는 도구 기독교는 왜 사용하지 못한단 말인가?

그 또한 하나님의 허락하심일텐데.......

그렇다면

기독교가 종으로 시작했나?

예수님은 양복입고 종치고 다니셨는가?

기독교는 새벽예배로 시작했나?


이것들은 적어도 불교에서 먼저 시작되었지 않는가?

내가 알기로는 삼국시대에도 불교는 종을 쳐서 예불 시간을 알리었다.

그들은  그때도 새벽 예불을 올렸다.


우리의 새벽예배 종 어디서 유래되엇을까?

설사 불교에서 유래 되었다 하더라도 도구를 사용하는 것은 편한대로 하면된다고 본다.

다만 신앙과 직접 관계되며 신적인 권위와 관계되는 일은 불가하다.

그 도구를 사용해서 더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다면 그것을 사용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물론 신학적인 문제나 신앙생활에 방해가 된다면 당연히 버려야 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관상기도 사역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버리겠다고 대답했다.

경기노회를 떠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경기노회를 떠나고 관상기도를 전한다면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이요.

내 사명을 완수하는 것이다.


내게 다가오는 문제가 있다면 나는 그것에 대하여 단호하게 생각한다.

왜냐하면 예수님도 공생에 사역을 시작할 때 마귀로부터 시험당하셨고 말씀으로 이기셨다.

나는 내게 주어진 사명과 사역을 완수하기 위해 모든 비평과 박해를 수용하겠다.


관상기도는 목사라서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내가 40일씩 9번 금식 기도와 산과 기도원, 교회에서 기도하며, 공부하고 훈련하며 그 체험하고 인정하는 것들을 전하는 것이다

나의 관상기도의 근본 신학은 총신에서 배운 신학, 즉 책은 벌코프의 조직신학과 기독교 강요를 바탕으로 삼고 있다.

관상기도에 대하여는 모든 기도 중 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관상기도를 시행함에 있어서 모든 관상기도를 인정하나 나는 십자가 요한의 주부적 관상기도를 한다.

내가 관심 가지고 따르는 것은 내가 읽고 소장하는 약 4~500여권의 영성관계 및 관상기도의 책 중에서

"무지의 구름" "십자가의 요한의 저서" "아빌라 테레사의 저서 일부"만을 최고의 책으로 따른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책을 보지 않는 것이 아니다.


다른 것을 봄으로서 내것을 더욱 확고히 할 수 있기 때문에 보고 판단하다.

나온 말이니 평가한다면 대부분의 기도나 나름대로의 교의들은 비슷하다.

수행방법도 대동소이하다.

다만 확실한 차이가 있는 것은 결과와 마지막이 다르다.

"예"를 든다면

요가 명상은 최후에 자기가 신이 되는 것이요

불교는 최후에 스스로가 부처가 되는 것이다.

다른 모든 수행들이 이같이 자기가 무엇을 이루는 것이다.

그러므로 수련에 임하는 자세가 다르다.

그들은 자기가 무엇이 되기 위하여 열심히 노력한다.

그러나 관상기도는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시도록 맡긴다.

그러므로 수행하려는 모든 사람은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삼상 3:10)의 자세로 나아간다.

그리고 그분의 뜻대로 살려고 노력한다면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하신 말씀대로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를 구하여 이루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우리의 죄를 자백하며 우리를 청결하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볼 수 있는 길은 오직 마음을 청결하게 하는 길 뿐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 5:8)

관상을 이루기 위해 무엇보다도 마음을 청결케 즉 욕( 慾)을 버리고 우리의 결함까지 버려야 합니다.

한가지 어려운 것은 관상가가 되려는 욕심, 하나님을 보고자 하는 욕심, 이 욕심까지도 버려야 합니다.

결국 환상을 보거나 환청을 듣거나 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면 관상에 이르지 못할 것입니다.


할말이 너무 많아서 끝을 맺으려 합니다.

마지막 부탁은 "우리는 아직도 훈련도상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따라서 관상상태에 이르기 위해 애타도록 구하지 마시고

그분 앞에 나아가서 모든 것을 버리고 주여 말씀 하시옵소서 종이 순종하겠습니다가 되십시오.

그분이 원하신다면 그분이 보시기에 적당한 때에 관상의 은총을 부어주실 것입니다.

갈망과 인내로 기다리십시오.

저외 여러분을 위하여 성령이 한없이 탄식하시며 기도하고 계십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 8:26)

성령님의 이 간구에 동의 하시어 아멘하고 조용히 기다리십시오.

다섯 처녀와 같이 돌아다니지 마시고, 다른 다섯처녀와 같이 신랑이 오실 때를 기다리십시오.

그리하시면 그분이 보시기에 합당한 때에 하나되어 주실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말씀은 내가 받은 주님의 말씀으로 이 말씀 때문에 신학교를 갖고 목사가 되었고 지금까지 사역합니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마 10:34~39)

이 소명의 말씀에 무릎꿇었고, 목회를 시작하였고, 이 소명이 있는 이상 아직 일어서지 못하겠습니다.


내가 사람의 권유를 따르겠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겠는가?

명예냐? 사역(관상기도)이냐? 택하라면 관상기도 사역이다고 명확히 맑힙니다.

아멘.

                                                                                               2015. 10.  11.

                                                                                                         고려수도원   박노열


경기노회 회원 탈퇴서.hwp






God Bless You !